귀신의 북리뷰 [종교학]/종교학 관련 교양서

당신은 '산'을 오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 2021. 8. 22. 14:33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 최종성/구형찬/김동규/심일종/심형준, 이학사, 2020.

 

 

안녕하세요. 점점 잡탕(?)이 되어가는 블로그를 보면서, 주인장의 성격이 어쩔 수 없는 반영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종교학 관련 서적은 꾸준하게 읽고 서평을 짧게나마 남기면서,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최종성, 구형찬, 김동규, 심일종, 심형준 선생님이네요. 다들 한 번쯤은 직/간접적으로 뵈었던 분들이기에 더욱 기대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흥미로운 내용이 주를 이루었네요.

 

저자들이 모두 종교학 혹은 인류학을 전공한 전문가답게 '산'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떤 분은 산 하나를 정해서 그 산과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가시기도 하고, 또 다른 분은 산에 얽힌 역사나 종교를 끌어와서 일반론을 전개하셨습니다. 책은 총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부 주제로는 동학, 황금산, 인왕산, 종산, 다양한 산.. 이런 식으로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책의 문체는 경어체로 서술되어 있기에 마치 대학 교양 강의를 듣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최종성 선생님이 쓰신 '산으로 간 동학'을 읽으면서는 수운, 해월, 의암 등과 같은 동학의 인물들이 결코 '평지'에서만 활동한 게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흔히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하면 우금치 고개나 전라도 고부, 황토현 벌판 같은 곳을 생각하잖아요?  근데 동학의 정신은 결코 평지에서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동학이 탄생하기까지는 엄연히 산이 존재하였다고 합니다. 산중의 기도, 명상, 수행, 사색, 공부는 당시의 동학 정신을 잉태하였습니다. 특별히 산은 인내천 사상을 중요시 여긴 동학에게 하늘과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산의 영험성, 신비함, 응축된 힘.. 을 통해 말입니다. 한편, 현대에는 공부라는 게 책상 앞에서 앉아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쯤으로 여기지만, 예전에 종교인들에게는 공부가 '몸짓을 동반하는 실천적 앎'이었다는 점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산'이라는 공간을 통해 세대 간의 동학 혼을 이어간다는 설명이 와닿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 종교 안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는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요?

 

구형찬 선생님과 김동규 선생님이 쓰신 파트는 미묘하게 대조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두 분 다 자신만의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끌어가셨는데요. 구형찬 선생님은 오늘날 변화되는 문화와 사회 속에서 만약 종교 유적, 전통 공간 등이 변형될 지라도, 얼마든지 수용하고 새로운 토대 위에서 민속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변화는 당연하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불가피한 변화를 받아들이며, 바뀐 시대상에 적합한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전통 문화가 의미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무속 신앙과 산의 관계를 주로 언급한 김동규 선생님은 오늘날의 사회 제도가 너무 민간 신앙과 문화, 민속 등을 헤치고 있다는 논지를 이어갑니다. 점점 더 사라져가는 옛날의 얼과 유적을 안타까워합니다. 더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한시라도 보존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약간의 대립각이 보이는 두 주장은 결국 하나로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종교 문화와 전통은 끊임없이 기억되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갱신을 통하거나, 아니면 보존을 통하거나 상관없이 말입니다. 

 

심일종 선생님은 집필진 중에서 유일하게 인류학자입니다. 평소에 인류학적 연구 방법론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인류학에서는 어떻게 연구 대상에 접근하나 살펴보기에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료와 역사적 문헌을 통해 종산에 대해 설명하시는 내용은 꽤 신선했습니다. 종산이란 특정 가문이나 혈연 공동체(협의 개념의 가족뿐만 아니라), 문중과도 같은 집단이 조상을 섬기는 산을 의미합니다. 종산은 가족, 친족, 동족 간의 종교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종산은 우리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일례로 분당중앙공원도 종산의 하나라고 합니다. 심일종 선생님은 종산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결국 한국인의 종산은 '사회적 조상'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산에서 모여 누군가를 추모하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누군가를 추모하고 기리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심형준 선생님의 글은 산에 대한 일반론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일단 개인적인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는데, 상당히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산에 오르기 꽤나 싫어하였고, 솔직히 지금도 싫어하거든요. 군대 이야기도 잠깐 언급되는데 감정이입이 잘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군대 경험이 산을 싫어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기에 그렇습니다. 산 오르기(등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그동안 영화로 어렴풋이 보아왔던 역사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게 해주었습니다. 대부분 등정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알게 되었네요.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남긴 명언도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들이 왜 산을 오르는지, 산을 오른다는 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는지 맛보기도 했지요. 악령의 산 파트도 재미있었습니다. 대개 험난한 산의 코스와 같은 곳이 악령의 산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 이런 곳이 오늘날에는 상업적으로 자주 이용된다고 하는데, 충분히 수긍이 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도 악령의 블로그(?)가 되도록 노오력을.. 

 

 

아무튼 오랜만에 상쾌한 느낌으로 종교학 책을 읽었습니다. 하나의 일상 소재로 이런 담론을 풀어갈 수 있다니.. 많은 것을 배우면서도 도전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는 저만의 좋아하는 소재로 글이나 책을 써보고 싶군요. 책을 다 읽고 서평까지 남기니까 하나의 산 정상에 올라온 것 같다는 마음이 듭니다. 훗날 코로나가 진정되면 아버지와 등산을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